운명은 제 할 일을 잊는 법이 없다. 한쪽 눈을 감아줄 때도 있겠지만 그건 한번 정도일 것이다. 올것은 결국 오고, 벌어질 일은 끝내 벌어진다. 불시에 형을 집행하듯, 운명이 내게 자객을 보낸 것이었다. 그것도 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에,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둘째를 낳는다면 직장을 아예 그만둬야 할지도 몰랐다. 두 아이에게 매달려 늙어 가는 내 인생이 보이는 것 같아 우울하기 짝이 없다. 몇 날 며칠 고민이 계속됐다. 낳을 것인지, 말 것인지.
어머니가 내 해명을 믿었더라면, 아니 한번 더 해명할 기회만 줬더라도 '사건'은 '사고'로 수정될 수 있었을 것을. 어머니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깊은 상처를 받았던 열 살짜리 소년이 사람에게서 격리돼야 할 포식자로 선고 받는 일도 없었을 것을, 긴 세월이 지난 오늘에 와서 '포식자' 손에 죽는 비극이 벌어지지도 않았을 것을.
누군가를 잃는 게 누군가를 죽이는 것보다 어렵다는 걸, 난생처음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진화심리학자인 데이비드 버스는 그의 저서 <이웃집 살인마>에서 다음과 같은 요지의 주장을 펼쳤다. 인간은 악하게 태어난 것도, 선하게 태어난 것도 아니다. 인간은 생존하도록 태어났다. 생존과 번식을 위해서 진화과정에 적응해야 했고, 선이나 학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었기에 선과 악이 공진화했으며, 그들에게 살인은 진화적 성공(유전자 번식의 성공), 즉 경쟁자를 제거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이 무자비한 '적응구조' 속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우리의 조상이다.
그에 따르면, 악은 우리 유전자에 내재된 어두운 본성이다. 그리고 악인은 특별한 '누군가'가 아니라, 나를 포함한 '누구나'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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