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자유주의를 규정하는 능력주의적 정치기획에 대한 재검토
고등교육이 신분상승과 물질적 성공 및 존중을 얻는 길이다?
성공한 사람은 자신의 재능과 노력의 결실을 향유할 자격이 있다?
오늘날 사회적 이동이 가장 잘 일어나는 국가들은 평등수준 또한 가장 높은 국가들인 경우가 많다.
교육, 보건을 비록해 직업 세계에서 개인을 뒷받침해 주는 수단에 대한 접근성에 달려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오늘날의 능력주의는 세습귀족제로 굳어져가고 있다.
아래쪽에서 올려다볼 때, 엘리트의 오만은 짜증나지 않을 수 없다.
일자리가 없거나 적자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나의 실패는 자업자득이다. 재능이 없고 노력을 게을리 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은 헤어나기 힘든 좌절감을 준다.
politics of humility
민주정치가 다시 힘을 내도록 하려면, 우리는 도덕적으로 보다 건설한 정치 담론을 찾아야내야 한다. 그것은 우리 공통의 일상을 구성하는 사회적 연대에 심각한 피해를 입히는 능력주의를 진진하게 재검토함으로써 가능하다.
세상이 반드시 각자의 능력에 맞는 보상을 주지 않기 때문에, 인생에는 신비, 비극, 겸손함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내가 돌이켜 해 아래서 보앗다. 빠른 경주자라고 먼저 도착하는 것이 아니다. 강한 자라고 사움에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다. 지혜로운 자라고 음식을 얻는 것이 아니다. 명쳘한 자라고 재물을 얻는 것이 아니다. 기능을 갖춘 자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다. 이는 때와 우연이 이 모든 자에게 임함이로다" <전도서>
자수성가, 자기충족적인 존재는 우리보다 운이 덜 좋았던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힘들어진다.
엘리트들은 출세 하지 못한 사람들을 깔보고, 결국 학력주의를 조장하고 학력 떨어지는 사람들의 사회적 인식과 망명을 훼손한다.
역사적 경험은 도덕적 인성과 통찰력을 필요로 하는 정치 판단 능력과 표준화된 시험점수를 잘 따고 명문대에 들어가는 능력 사이에 별 연관성이 없음을 보여준다. '최고의 인재들' 이 저학력자 동료 시민들보다 통치를 잘한다는 생각은 능력주의적 오만에서 비롯된 신화일 뿐이다.
능력주의의 이상은 불평등을 치유하려 하지 않는다. 불평등을 정당화 하려 한다.
내가 가진 재능이 우연히 사회에서 높은 가치를 쳐주는 재능인 것은 나의 노력의 결과가 아니며 도덕적 문제도 아니다. 단시 행운의 결과일 뿐이다. 하이에크
하이에크는 사람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얻은 게 아닌 생득적 능력에 따라 소득을 얻는다는 관념에 반대했다. 또한 그것은 수요와 공급의 우연성에 의존한다고도 했다. 내가 가진 재능이 희귀한지 흔해빠졌는지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잇는 영역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시작에서 갖는 위치에 따라 나의 소득은 결정된다.
성공에 대한 시각을 바꾸고 능력주의적 오만에 의문을 제기함
능력이란 말로 옹호되어 온, 그러나 분노를 퍼뜨리고 정치에 해를 끼치며 사회를 갈라놓는 부와 명망의 불평등에 이의를 제기
교육과 일
제비뽑기식 최종합격자
인재 선별기가 끼친 폐해를 바로잡으려면 직업 훈련에 예산을 더 많이 투입하는 것 이상이 필요하다. 우리가 여러 다른 일들 사이에서 무엇을 더 높이 평가하는지에 대한 재고가 있어야 한다.
명예는 별로 처주지 않는 직업들도 공동의 선함에 기여하는 훌륭한 과정으로 존중되어져야 한다.
'우리는 우리 운명의 주인이며 뭐든 우리가 얻은 것을 가질 자격이 있다' 는 능력의 가장 유력한 라이벌
'우리 운명은 우리가 전부 통제할 수 없고 우리의 성공과 실패는 다른 누군가에게, 신이나 운명의 장난이거나, 순간의 선택에 따른 예상 밖의 결과등에 좌우된다' 는 생각이다.
능력주의 시대는 노동자들에게 더 악랄한 상처를 입히고 있다.
시장이 승자에게 퍼붓는 과도한 보상을 정당화함과 동시에 비대졸자 노동자에게 던져 주는 쥐꼬리만한 보상도 당연시 했다.
공동선이란 모든 사람의 선호와 이해관계의 집합
소비자 중심적 공동선론을 기각하고 '시민적 개념'이라 불릴 만한 대안을 선호 하는것이다. 경제 활동 자체만으로 수립될 수 없고, 동료 시민들과 어떻게 정의롭고 좋은 사회를 구현할지 논의 해야 한다. 시민덕을 배양하고, 정치 공동체에 가치 있는 목표가 무엇인지 합리적으로 도출해야 한다.
우리가 기여하는 것의 진짜 가치는 우리가 받는 급여액으로 판단할 수 없다. 급여액은 수요와 공급의 우연적 상황에 좌우된다. 기여분의 참된 가치는 우리 노력이 향하는 목표의 도덕적, 시민적 중요성에 달려 있다.
우리의 본질은 우리 역량의 배양과 실행을 통해 실현하는데 있다.
일은 그 최선에 있어 사회적 통합 활동이며 인정의 장이고, 공동선에 기여해야 한다는 우리 책임을 명예롭게 수행하는 방식이다.
공동선에 우리가 진정으로 가치있게 기여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디에서 시장의 낙인이 잘못되었는지르 반성하고, 숙고하고, 민주적으로 공동의 대책을 수립하는것
저소득 노동자들이 당장 상당한 시장 임금을 받을 기술이 없더라도 수준있는 생활을 할수 있기를 바라며,
임금 보전 정책은 여러 유럽 국가들에게 코로나 사태로 실행에 옮겨 졌다.
일의 존엄과 사회적 응집에 친화적인 노동 시장 조정
금융 공학은 경제를 보다 생산적이게 하는 일과는 전혀 무관하다.
금융 종사자들이 투기 활동을 하면서도 분에 넘치는 명성을 누리는 현실은 실물 경제에서 유용한 재호와 용역을 생산하며 생계를 이거가는 사람들의 존엄을 조롱하는 것이다.
'가져가는 자' 거객의 물로소득을 노린 투기를 일삼으며 실물경제에는 기여가 전혀 없는 금융없계 종사자들
우리는 소속이라는 의식 없이 우리 스스로를 우리가 빚지고 있는 공동체의 구성원들이라는 인식 없이는 공동의 목표와 수단에 대해 숙고할 수 없다.
사회적 상승에만 집중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요구하는 사회적 연대와 시민의식의 강화에 거의 기여하지 못한다.
우리는 우리의 다른 의견에 관해 타협하며 우리의 다름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 공동선을 기르는 방법이다.
사람들은 시장이 각자의 재능에 따라 뭐든 주는 대로 받을 자격이 있다는 능력주의적 신념은 연대를 거의 불가능한 프로젝트로 만든다.
사회속 우리 자신을 그리고 사회가 우리 재능에 준 보상은 우리의 행운 덕이지 우리 업적 덕이 아님을 인지하고 운명의 우연성을 제대로 인지하면 일정한 겸손이 비롯된다.
그런 겸손함은 우리를 갈라 놓고 있는 가혹한 성공 윤리에서 돌아설 수 있게 해준다. 덜 악의적이고 보다 더 관대한 공적 삶으로 우리를 이끌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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