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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19 청춘아! 멈춰라, 생각하라

by 101Architect 2016. 1. 20.

청춘아! 멈춰라, 생각하라 
기하라 부이치 (지은이) | 정돈영 (옮긴이) | 부자나라 | 2014-07-28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119532880X


카프카의 소설 "신판" 


행복한 죽음을 선택한 철학자 소크라테스

죽음을 목전에 둔 소크라테스는 아내인 크산티페에게 "당신은 부당하게 살해당하는 것입니다. 라는 말을 듣고 "그렇다면 당신은 내가 정당하게 살해되는 것을 바라는가" 라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지성의 데모크라시를 찾아서 데카르트

지성의 병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에 가장 중요한 사람간이 대화의 통로를 닫아버리는 장애가 된다. 데카르트는 그와 같은 병에서 인간을 해방시키려고 했던 것이다. 


이성을 일꺠운 사람 칸트

네 의지의 격률이 네 자신에게뿌난 아니라 항상 동시에 보편적 입법의 원리로서 타당하게끔 행하라.

이것은 "마음이 바라는 바를 따르지라도 도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라는 공자의 말과 거의 같은 이야기이다. 실제로 칸트는 철학 그 자체가 되어버린 생활, 생활 그 자체가 되어버린 철학을 실천한 인간이었다.

자신의 눈으로 보고, 그리고 모든 것을 철저하게 검토하는 일 - 이것이 칸트의 좌우명이었다.


이성이 세계를 지배한다 헤겔 

삶의 모습이 어떻든 모든 사람이 마음에 안고 있는 문제는 그다지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인간이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의 의미와 세계가 이렇게 존재하고 있는 것의 의미야말로 모든 사람의 마음에 걸리는 문제들이 아니겠는가. 

인간의 형성과 발전에 대한 가능성과 이성의 우위를 믿었던 헤겔은 '모든것은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우리를 격려하고 있다.


행복을 꿈꾸는 이들에게 보내는 메시지 파스칼

파스칼이 고독한 생애를 보냈다고는 하지만 인간을 싫어한 것은 아니다. 파스팔이 강조하는 것은 인간이 얼마나 자기 자신을 속이며 살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인간은 죽음, 비참, 무지를 고칠 수 없었으므로 자기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 그것들을 굳이 생각하지 않도록 궁리했다."


메르헨의 철학 키에르케고르

어떤 사람이 청년기 무렵 술에 취한 상태에서 여자가 있는 장소를 찾아가자는 유혹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에게는 그것에 대한 일체의 기억이 남아 있지 않다. 그리고 지금 그는 결혼하려 하고 있따. 하지만 이때 불안이 싹트기 시작한다. 자신은 벌써 옛날 자신의 아버지의 모습이 되어 이는 것은 아닌가, 세계의 어딘가에 자신에게 책임이 있는 어떤 숙명적인 자식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일로 그는 밤낮으로 괴로움을 받는다...

키에르케고르의 이야기는 오로지 자신을 괴롭혀 그 괴로움이 깊어지는 것을 즐거워하는 것 같은 어떤 자학적인 면도 느껴진다. 

불안이란, '자유의 현기증' 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자신앞에 무한한 가능성이 놓여 있다는 사실(그것이 자유라는 것이다)만큼 인간에게 두려운 것은 없고 그 두려운 기분이 '불안'이라는 것이다. 


허무를 초월한 니힐리스트 니체

니힐리즘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라는 스스로의 물음에 "최고의 제가치가 그 가치를 박탈당한다는 것" 이라고 답하고 있다.

즉 그는 언제나 '그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말하지 않고 '그것은 어떻게 생각하면 좋을 것인가'를 말하고 있다. 

니힐리즘은 허무 혹은 허망을 뜻하는 '니힐'이라는 라틴어에서 온 말이다. 

에고이즘(이기주의) "내가 우선 증명하려고 생각하는 것은 에고이즘 이외에는 어떠한 거도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라고 선언한다.

일반적으로 에고이즘이란 '제못대로' 산다는 것, 무엇이든 자신의 생각대로 한다는 것을 말한다. 자기를 억제하는 것이 낡은 도덕이라고 한다면 에고이즘이야말로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이라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자기 자신에게 충실하는가 하는 사실이다. 니힐리즘이란 자신에게 충실하지 않다는 것이기도 하다. 

"가장 후회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신의 가장 고유한 욕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 자신을 잘못 이해하는 것, 자신이 저열한 자라고 단정하는 것, 자신의 본능을 구별하는 섬세함을 잃는 일이다. 사람은 이와 같은 진정한 에고이즘의 결여를 결코 자신에게 허용해서는 안된다. 

대담하게 자기 자신을 믿는 것이 좋다."

"자네들은 차라투스트라를 믿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차라투스트라 그 자체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대들은 나의 신도이다. 하지만 무릇 무엇인가를 믿는다는 사실에 무슨 의미가 있다는 것인가.

그대들은 아직 자기 자신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우연히 나를 찾아냈다. 신도란 언제나 그러한 것이다. 그러므로 믿는 다는 것은 하찮은 것이다.

지금 나는 명령한다. 나를 버리고 그대들 자신을 찾아 낼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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